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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소년 30주기, 유력한 용의자로 새로운 인물이 지목당했다

Life_style 2021. 6. 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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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각각 한 살 터울의 동네 친구들은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가겠다며 집을 나선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뒤 유골로 발견되어 전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용의자도 목격자도 특정하기 어려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30년째 의문만 가득 남긴 채 진행 중이다. 인적이 드문 대구 와룡산 뒤편, 낙엽으로 뒤덮인 산길을 오르면 약 1m 길이의 움푹 파인 골짜기가 있다. 지난 2002년 9월 26일 이곳에서 개구리 소년 5명의 유골이 전부 발견됐다. 아이들이 실종된 지 딱 11년 6개월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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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대대적인 수색과 유가족의 노력에도 11년간 찾을 수 없었던 아이들은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됐다. 도토리를 주우러 갔던 등산객 두명이 와룡산 제방골에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이곳은 생전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던 불미골에서 동쪽으로 채 1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항공사진 판독 결과 유골 발굴 지점에서 고속도로와 민가의 불빛을 충분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산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매일같이 뛰어놀던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 이유를 두고 무성한 추측이 난무했다.

유튜브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산에서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지만 부검을 맡았던 경북대 법의학팀은 일부 아이들의 두개골에 남아있던 인위적인 손상 흔적을 근거로 명백한 타살이라는 결론을 발표했다. 특히 아이들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발견된 김영규군의 옷에 남아있던 매듭 역시 타살의 근거가 됐다. 김군의 상이는 뒤로 묶여있었고 하의 역시 묶인 채 발견됐다.

유튜브

현재까지도 용의자가 전혀 특정되지 않은 사건, 그런데 얼마 전 한 유튜브 채널에 댓글이 달렸다. 이 사건에서 특이한 점은 아이들의 유골이 한자리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다섯 명의 아이들이 한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점은 1명 혹은 그 이상의 범인이 5명을 한 자리에서 통제했다는 뜻이다.

당시 아이들 모두 초등학생이기는 했지만 이 가운데 3명은 4~6학년의 고학년이었다. 과연 범인 혼자 이 아이들을 제압하는 것이 쉬웠을까? 한 누리꾼은 이를 두고 아이들 모두에게 강제성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한 선생님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폭력성이 매우 높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위해를 끼쳤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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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튜브에 달린 댓글이다. "지도에 학교랑 매장장소 거리가 딱 아이들을 묻고 그 다음 날 출근하기 좋을 정도로 가깝다. 범인은 와룡산 지리를 잘 아는 게 분명한데 그 학교에서 근무하며 산에 다니고 했다면 알 이야기고 저 위치가 익숙한 것이다. 학교에서 저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이 익숙한 그 당시 주민이면서 선생님이었다면 답이 되지 않나? 아이들이 모르는 성인이 5명을 한 번에 제압 또는 통솔할 수 없다는 상식을 반대로 생각하면 그 초등학생들 모두를 아는 성인인 선생님. 그렇다면 흉기나 위협 없이도 충분히 말로도 5명 정도는 통제가 가능하다. 특히 2011년 그알 개구리 소년 방송분 중에 15초 분량밖에 안나와서 상당히 아쉬웠는데 당시 형사가 수사했다던 교사가 가장 의심이 많이 간다. 교편을 내려 놓을 정도로 아이들을 향한 폭행이 심했다고 인터뷰하던데 그 시절의 교사들은 교권이 너무 넘칠 정도로 보장되던 시절이었음에도 아이들 체벌을 한 것을 가지고 잘릴 정도면 요즘 말하는 용어로 분노조절장애성향이다. 한마디로 매우 폭력성이 높은 선생이라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그 시절 선생이 체벌 좀 한다고 잘리지는 않았을거다. 물론, 잘린 것인지 지가 스스로 관둔 것인지도 알 수 없지만. 이 사건의 범인을 선생님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용의자 특성에 부합한다. 저 학교에 근무하려면 당연히 학교근방에 오래 있었으니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하니까 매우 자연스럽게 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 군필 남자교사라면 매듭과 공구 문제는 문제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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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주장과 비슷하게 많은 범죄 프로파일러들 역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제압하고 통솔하며 데리고 다니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지적했었다. 한편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들의 부모님은 자신의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어째서 아이들을 죽였는지 알 길이 없어 하루하루를 고통에 살고 있다. 당시 13세였던 철원의 아버지 우종우(73)씨는 "집에 작은 쪽지 하나만이라도 남겨놔도 좋으니 아이들이 왜 세상을 떠나야 했는지 범임이 양심선언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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